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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의 최고수가 된 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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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의 최고수가 된 수학 교수


에드워드 소프 박사는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도박사처럼 보이지 않는다. 올해로 79세인 그는 멜빵바지에 금속테 안경을 착용했다.

최근 어느 토요일 밤, 라스베이거스 교외의 한 연회장에 세계 최고의 카드 카운터(card counter) 70명이 집결했다. 카드 카운터는 블랙잭(카드의 숫자 합이 21점에 가까운 사람이 이기는 게임) 테이블의 카드를 외워서 좋은 패가 나올 확률을 계산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초조한 듯 소프 주위를 서성거렸다. 그들 중에는 부동산 투자자, TV 프로듀서, 심지어 복음주의파 기독교도도 있었다. 여자 같은 트레이닝복 바지 차림에 ‘다이아몬드 마이크’ 같은 가명을 부착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장 차림에 미모의 여성과 동행한 사람도 있었다. 뜻밖에 모두가 수학 천재는 아니었다.

블랙잭 볼(Blackjack Ball)로 알려진 이 행사는 16년 전, 라스베이거스에서 활동하던 카드 카운터 맥스 루빈이 도박기술(tricks of the trade)을 공유할 목적으로 파티를 개최하면서 시작됐다. 지금은 바로나 리조트&카지노가 후원한다. 참가자들은 이곳에서는 게임을 하지 않기로 했지만 다른 곳에서 게임을 하는 데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따라서 건장한 경비원이 그들의 명단이 외부로 새나가지 않도록 지킨다. 그들은 블랙잭 게임 세계 최고수 타이틀을 놓고 경합을 벌인다. 여러 참가자들 사이에서 카드 카운팅의 ‘대부’로 불리는 소프가 가장 주목받는다.

소프의 베스트셀러 ‘딜러를 이겨라(Beat the Dealer)’가 출간된 지 50년이 흐른 지금, 블랙잭은 네바다에서나 가능하던 그저 그런 게임에서 전 세계 카지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임 중 하나로 탈바꿈했다. casinocity.com에 따르면 현재 최소 34개 주 700여 곳을 포함해 어림잡아 2000개의 도박장에서 블랙잭 게임을 할 수 있다. 1988년 아카데미상을 받은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레인맨’부터 ‘21’까지 할리우드 영화에도 등장했다. ‘21’은 매사추세츠 공대(MIT)의 카드 카운팅팀을 소재로 한 케빈 스페이시 주연의 2008년 영화다.

이처럼 관심이 커지자 카지노들은 가짜 신분증에 어설픈 변장을 한 카드 카운팅 천재들을 찾아내려 온갖 아이디어를 짜냈다. 여러 세트의 카드를 쓰고 얼굴인식 소프트웨어까지 동원했다. 하지만 카드 카운팅이 불법은 아니기 때문에 대다수 카지노는 손님의 퇴장을 요구하는 게 전부다. 그래도 카드카운터들은 새로 문을 여는 곳을 찾아가면 그만이다.

카드 카운팅 기법은 많다. 그 중 초보자가 즉석에서 쉽게 익힐 만한 건 하나도 없다. 그 이론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낮은 수의 카드가 많이 남아 있으면 적게 베팅하고, 낮은 수의 카드가 대부분 나오고 높은 수의 카드가 많이 남아 있을 때는 크게 베팅한다. 그런 식으로 계속 반복할 경우 장기적으로 통계상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소프가 블랙잭 게임에서 이길 수 있겠다고 생각한 때는 1958년이었다. 군인 4명이 1953년에 개발한 블랙잭 기본 전략에 관한 글을 우연히 읽게 됐다. 그 중 한 명인 윌버트 캔티가 흑인이었던 탓에 당시 흑백분리 정책이 남아 있던 메릴랜드주의 바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래서 병영 내에서 블랙잭을 하면서 계산기를 이용해 모든 패의 조합이 나올 확률을 분석했다.

당시 수학 박사였던 소프는 그 글의 작성자 중 한 명에게 편지를 보내 수식 원본을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그 뒤 소프는 직접 프로그래밍한 IBM 컴퓨터를 이용해 최초의 카드 카운팅 전략을 개발했다. 다음에는 그 가치를 알아줄 사람을 찾아야 했다.

소프는 1961년 자신의 발견을 미국수학학회에 발표했다. 도박계의 대다수가 코웃음을 쳤지만, 톰 울프라는 젊은 기자가 관심을 보였다. 울프는 워싱턴포스트지에 소프의 전략을 소개했다. 곧 그 정보를 입수한 엠마누엘 키멜이라는 악명 높은 도박사가 그에게 실전 테스트용으로 1만 달러를 건네줬다. 단 키멜과 그의 사업 파트너가 수익의 90%를 가져간다는 조건이었다.

그 전략은 효과가 있었다. 소프는 1962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펴냈다. “그 게임이 하루아침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고 블랙잭 볼 설립자 루빈이 말했다. 소프는 업계의 요주의 인물이 됐다. 한 카지노는 그에게 약을 먹이려 했다고 전해진다. 다른 카드 카운터들도 협박이나 구타를 당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던 중 1964년 4월 1일, 카지노 사업주들이 담합해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게임 규칙을 바꾸기로 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 정보가 금방 새나갔다. 참가자들에게 게임이 불리해지자 네바다 전역의 블랙잭 테이블이 파리를 날리게 됐다. 몇 주도 안돼 사업주들은 규칙변경을 취소했지만 대신 딜러가 카드를 자주 섞을 수 있도록 여러 세트의 카드를 사용하고 카드 통(card shoe)을 이용해 패를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1966년까지 소프가 딴 돈은 2만5000달러에 달한다고 전해진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고 소프는 말한다. “중요한 건 과학과 아이디어였다. 추가 수입이 생활에 꽤 보탬이 됐지만 말이다.”

1960년대 후반 소프는 월스트리트로 옮겨 블랙잭에서 얻은 통계 지식을 활용했다. 그러나 그가 은퇴했다고 카드 카운팅 혁명이 끝난 건 아니다. 1970년대에 도박꾼들은 카지노 금고를 터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팀워크였다. 한 도박꾼이 카드 카운팅을 하면서 작게 베팅할 동안 또 다른 도박꾼이 파트너의 신호를 보면서 크게 베팅하는 식이다.

1990년대 하나 이상의 MIT 카드 카운팅팀이 같은 전술을 구사하며 사람들의 고정관념까지 이용했다(even trading on stereotypes). “그들은 아시아 여성이 위협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올해 볼 행사에 참석한 MIT 팀 전 멤버 로리 차오가 말했다. “마치 초짜인 양 한번에 5달러씩 베팅하면서 앉아 있었지만 사실은 모든 게임을 내가 통제했다.”

올해의 경연에서 첫 번째 도전과제로 게임 지식을 테스트하는 문제들이 출제됐다. 21문제 중 12개 이상을 맞춘 사람은 거의 없었다. 소프는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루빈이 호명한 최고득점자는 앤디 Y였다. 하버드 수학과를 졸업하고 한때 토너먼트에서 3년 연속 우승했던 제임스 그로스장의 가명이다. 2008년에 루빈이 게임을 그만하라고 요청할 정도로 그의 기량은 출중했다. 현재 이 행사의 트로피는 그의 이름으로 명명됐다.

30분 뒤, 탄탄한 체격의 컴퓨터 프로그래머와 근육질의 전직 레슬러가 결승전에서 맞붙었다. 그로스장은 근처 테이블 옆에 서서 친구와 잡담하고 있었다. 그는 “20년 전에는 도박할만한 곳이 라스베이거스와 애틀랜틱 시티뿐이었다”고 말했다. “돈을 왕창 따면 그걸로 끝이었다. 지금은 어디를 가도 카지노가 있고, 어쩌면 한 군데 정도는 허점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곳을 일단 찾아내기만 하면 돈을 최대한 우려낸다(once you find it, you pound it).”

때로는 해외 원정을 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루빈은 파나마, 프랑스, 남아공 모두 공략할 만한 곳들이 제법 있다고 한다. “아직 우리가 우위에 있다”고 그로스장이 말했다.

잠시 후 실내에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자신에게 돈을 걸지 않아 우승이라는 명예만 얻었다. 하지만 그에게 돈을 건 한 사람은 6000달러에 가까운 횡재를 했다.

축하인사가 오고가는 동안 소프가 지나가자 그로스장은 십대 팬처럼 열광하며 번개같이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제 책에 사인해주시겠어요?”

“그러고 말고.” 소프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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